스키 타고 축구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나다

휴머노이드 로봇한테 스키도 태우고 축구도 시키며 별 시도를 다 하는 이들이 있다. 한양대학교의 휴머노이드 로봇 메이커 팀 ‘히어로즈’(HERoEHS, Hanyang Erica Robot Engineering for Human Society)가 바로 그들이다.

히어로즈는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기원하며 열린 휴머노이드 로봇들의 스키대회 <스키로봇챌린지>에 다이애나(DIANA, 여성 스키선수 다이애나 골든의 이름에서 따옴)를 이끌고 출전해 주목받은 바 있다. 그랬던 그들이 이번 달에는 축구대회에 나선다. FIFA 월드컵 말고 세계 최고 권위의 로봇축구대회 로보컵에 말이다. 새 로봇의 이름은 앨리스(ALICE, Artificial Learning Intelligence Robot for Curture & Entertainment)다.

<스키로봇챌린지>에 출전한 한양대학교 휴머노이드 로봇 메이커 팀 히어로즈와 스키로봇 다이애나 (사진: 히어로즈팀)

<스키로봇챌린지>에 출전한 한양대학교 휴머노이드 로봇 메이커 팀 히어로즈와 스키로봇 다이애나 (사진: 히어로즈팀)

축구로봇의 이름에 웬 컬처와 엔터테인먼트가 들어갔냐는 우문에 한재권 박사와 엄윤설 디자이너는 이렇게 답했다. “축구만 하겠다는 용도로 만드는 게 아녜요. 문화와 오락의 범주에서의 다양한 용도로 만들고 싶었죠.”

단순히 스키만 타거나 축구만 하는 로봇이 아닌, 자율주행과 인공지능을 다각도로 갖춘 진정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들고 있다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스키 로봇 다이애나를 만들 때 어떤 기술을 중점으로 개발했나요?

우리가 스키 타는 로봇을 만들어야겠다 했을 때 섭외해야 할 인물 1순위가 스키선수였어요. 그래서 서울대학교에서 운동 역학을 공부하는 전직 국가대표 스키선수 문정인 코치와 함께했어요.

결국은 사람이 타는 모습과 가장 가깝게 흉내를 내야 의미 있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스키를 타기 위해 허리를 구부리거나 발목 각도를 조정하는 등의 능력이 생기면 그 기술을 바탕으로 일상에서의 다른 행동들도 가능할 테니까요. 로봇이 스키를 탄다고 스키만이 목적이 아니란 말이죠. 기반기술 갖추기가 진짜 목적이에요. 이 정도까지 해낸 건 저희가 최초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네요.

인간의 움직임을 그대로 가져가는 데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사실 처음에는 스키가 쉬울 줄 알았어요. 한 발 한 발씩 떼는 보행과 달리 스키는 두 발을 다 붙이잖아요. (웃음) 그런데 스키를 탈 때 우리가 컨트롤하기 어려운 외부 요인이 너무 많았어요. 눈이 어딘가는 얼고 어딘가는 녹은 부분이 있으니까 곳곳마다 순간 가속도가 달라져서 애를 먹었어요. 완전 뒤통수 맞은 거죠.

그래도 기술적으로 허리, 발목, 무릎 등을 최대한 문 코치님이 준 팁에 따라 최대한 실제 스키선수가 움직이는 것처럼 구현했어요. 현재 유행하는 크로스 언더에다 카빙 턴도 적용했고요. 구경 온 스키선수나 스키강사들이 보고 다들 놀랐어요. “장난감 만드는 줄 알았는데 진짜 스키를 타네요!” 하면서요.

연구실에서 휴식 중인 다이애나

연구실에서 휴식 중인 다이애나

뉴질랜드로 전지훈련도 다녀왔어요. 거기까지 가서 무엇을 느끼셨나요?

주최 측에서는 웅진플레이도시에 있는 실내 스키장을 일주일에 한 번 쓸 수 있도록 배려해줬어요. 하지만 인공 눈의 질이 실제 눈과 너무 달라서 그걸 기준으로 연습했다가는 실전에서 결국 다 바뀌겠더라고요. 전략을 세웠죠. 여름방학 때 결판을 내야겠다고. 그래서 6월에 연구프로젝트가 시작됐는데 두 달 만에 로봇을 만들고 얘를 데려다가 보름간 뉴질랜드까지 다녀온 거예요.

가서는 정말 고시 공부하러 절간에 들어간 것처럼 잠도 못 자고 매일같이 연구만 했어요. 우리를 방해하는 모든 요소를 차단한 채 집중하고 또 집중했죠. 그러면서 우리는 다른 팀들과 달리 매우 빠르게 실전 테스트를 마칠 수 있었어요. 진짜 설산을 겪고 나서는 설계부터 다 바꿔버렸거든요. 필드테스트가 없으면 연구실에서 백날 해봐야 소용없어요. 빠른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정확한 방향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는 게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했어요.

다이애나가 전지훈련장에서 활강하고 있다. (사진: 히어로즈팀)

다이애나가 전지훈련장에서 활강하고 있다. (사진: 히어로즈팀)

로보컵에 출전할 로봇 앨리스에 중점적으로 챙기는 기술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보행이죠. 로봇에게 보행은 매번 한 발을 드는 순간이 있다는 거고 이때 든 발을 다시 땅에 내려놓는 순간까지가 위기예요. 그때마다 중심을 잡는 컨트롤이 매우 어렵거든요. 로봇의 키가 얼마인지 무게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상·하체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골반의 폭이나 발 크기는 어떤지 안정성을 잡고자 고려해야 할 것들이 정말 많아요.

지금 우리는 여러 보행 기법 중 2가지에 집중해서 투 트랙으로 가는 중이에요. 하나는 일본에서 고안된 이론적으로만 가능하다던 보행 방법이었는데 3년 전쯤엔가 실행에 성공해서 화제가 된 기법이 있거든요. 훨씬 최신인 데다 효율적인 이 버전을 가져다가 앨리스에 대입해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요. 또 하나는 오픈 CV처럼 공개된 보행소스고요. 이 버전은 플랜B로써 같이 준비하고 있죠.

웃옷을 멀끔히 차려 입은 엘리스(사진: 히어로즈팀)

웃옷을 멀끔히 차려 입은 앨리스(사진: 히어로즈팀)

이번에는 축구선수와 같이 일하지는 않나요?

축구선수와 같이하지는 않아요. 왜냐면 스키와 달리 우리 모두 걸어 다닐 줄은 아니까요. 그리고 로봇이 일반인이 차는 것만큼만 차도 지금은 엄청 대단한 거예요. 때문에 이 정도로 하고 있지만, 미래에는 또 모르죠.

로보컵에는 2050년까지 세워진 목표가 있어요. 성인 크기로 인간 축구팀과 겨룰 만한 수준의 로봇팀을 만드는 거죠. 매년 로보컵 경기가 진행되면서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가 대단해요. 그때쯤이면 진짜 될 것 같아요. 제가 은퇴했을 때겠네요. (웃음) 30여 년 정도 뒤라면 인간의 축구기술을 배우겠다고 축구선수를 초빙할 수도 있겠죠. 아직은 아니겠지만요.

엘리스가 팀원들과 보행을 연습하고 있다. (사진:히어로즈팀)

앨리스가 팀원들과 보행을 연습하고 있다. (사진:히어로즈팀)

엄윤설 디자이너가 설계 중인 엘리스의 몸통

엄윤설 디자이너가 설계 중인 앨리스의 몸통

로보컵의 경쟁상대로는 어떤 팀들이 있는지요?

월드컵 하면 떠오르는 전통의 강호가 있듯이 로보컵에서도 그렇게 불릴 만한 팀들이 있어요. 독일과 일본 쪽 팀들이 굉장히 강하거든요. 예전에 한재권 박사가 미국 소속으로 있을 당시에 그 팀이 독일, 일본 외의 팀 중에서 딱 한 번 우승했었어요. 그게 2011년이었어요.

독일과 일본이 매우 오랫동안 로보컵에 참가하면서 기술과 노하우를 상당히 축적해온 상태예요. 연구진들이야 매번 바뀌고 로봇 역시 매번 업그레이드되고 달라지지만, 그 기술을 쌓고 있는 팀은 동일하죠. 성인 크기 로봇을 소화할 수 있는 팀들부터가 아직 몇 없어요. 전 세계에서 참가를 선언한 팀이 우리를 포함해 여덟 개 팀뿐이에요.

올해 로보컵에서의 목표는 어디까지인가요?

우리는 이번이 첫 출전이어서 시작부터 “우리가 다크호스다!” 하지는 않아요. 그러면야 좋겠죠. 처음부터 “우리가 우승하겠습니다!” 하면 듣기에는 패기 있고 좋아 보이겠지만 정말 그렇게 돼버리면 독일이나 일본처럼 10년 넘게 기술을 다져온 팀들로서는 황당할 일일 거예요.
일단 이번 대회에서 우리의 목표는 출전에 의의를 두고 그곳의 분위기와 감을 익히는 거예요. 그다음 내년 호주에서 대회를 치를 때에는 우리도 한 방 보여줄 수 있게끔 더 준비해야죠.

엘리스의 다리가 로보컵에서 축구공을 찰 준비에 한창이다.

앨리스의 다리가 로보컵에서 축구공을 찰 준비에 한창이다.

로보컵 종료 후에는 남은 2018년을 어떻게 보낼 생각인가요?

우선 좀 쉬려고요. (웃음) 재작년 가을부터 제대로 쉬지도 못했어요. 지난해 4월에는 에디(EDIE)라는 다른 로봇으로 기획한 공연이 있었고요. 6월에 다이애나 개발을 시작해 뉴질랜드까지 오가며 미친 듯이 만들어서 올해 2월 스키로봇챌린지에 나갔죠. 3월에 에디 공연을 또 했고요. 그리고 6월인 지금은 앨리스 데리고 로보컵 준비하잖아요. 죽을 것 같아요.

10월 말엽쯤 과천과학관에서 에디 3차 공연까지 마치고 나면 그때부터는 우리가 확보한 기술을 다지는 시간을 좀 가져야 할 것 같아요. 여태껏 생산에 목적을 두고 계속 만들어만 왔거든요. 이제는 이 기술들이 완전히 익을 수 있게끔 해야죠. 서둘러서 될 건 아녜요. 여유를 갖고 숨을 쉬어가면서 차근차근 돌이켜보고 정리하게요.

히어로즈 팀내 공간에 붙은 표어. ‘한 번 납땜마다 한 번 체크’의 중요성을 담았다.

히어로즈 팀내 공간에 붙은 표어. ‘한 번 납땜마다 한 번 체크’의 중요성을 담았다.

방금 말씀해준 에디에 대해서도 살짝 소개를 부탁드려요.

에디(EDIE)는 이모셔널 디자인 앤 인터랙티브(Emotional Design & Interactive Entertainment)의 약자에요. 앞서도 말했지만 우리는 엔터테인먼트에 꽂혔거든요. 기존의 로봇 공연 하면 생각나던 객석과 무대가 분리된 춤 공연 같이 한정된 틀을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곧 다가올 1인 1로봇 시대를 그리며 새로운 형태의 공연을 만들었죠. 공연장에 들어서면 로봇 하나가 한 사람만을 따라다니면서 상호작용을 함께 나누고 주어진 미션을 해결하는 내용이에요. 이것도 세계최초라 말할 수 있고요. 현재 파트너사도 찾고 있답니다.

어린이들이 에디와 함께 어울려 놀고 있다. (사진:히어로즈팀)

어린이들이 에디와 함께 어울려 놀고 있다. (사진:히어로즈팀)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일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왜 휴머노이드일까요?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이유는 형태·환경적인 부분과 심리적인 부분으로 나뉘어요.
먼저 형태적으로 얘기해보죠. 우리가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은 인간의 크기에 맞춰 보편화해 만들어졌어요. 문고리의 높이나 책걸상의 생김새 등등 모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와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있으면 우리가 하는 일들을 다 할 수 있어요. 안 그러면 청소하기 위해서는 청소 로봇을 별도로 돌려야 하고 요리하려면 요리할 수 있는 로봇팔만 따로 갖고 있어야겠죠. 하지만 휴머노이드가 있다면 이 모든 게 단 한 대로 끝나요. 그래서 휴머노이드입니다.

심리적인 까닭도 말씀드리기 전에 먼저 곰 인형을 예로 들어볼게요. 곰 인형의 상체 양옆에 달린 걸 뭐라고 부르나요? 손이라고 부르죠? 분명 동물인데도 앞발이라 부르지 않는다고요. 이처럼 사람은 심리적으로 자기가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을 만들었고 그것이 자기랑 닮았다고 투사해왔어요. 사람과 닮은 것일수록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받아서죠. 로봇도 마찬가지예요. 휴머노이드 로봇이 여러 면으로나 인간들에게 미칠 영향은 어마어마해요.

사람과 닮은 휴머노이드를 만들 때 주의하는 점이 있다면요?

심리적으로 조심해야 할 점이 있죠. 사람을 닮은 존재일수록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는 건 사실이지만 그 닮은 정도가 미묘하면서 사람이 아님을 확실히 알 경우에는 불쾌지수가 갑자기 확 높아져요. 호감도가 점점 올라가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툭 떨어지거든요. 그걸 협곡 같다고 해서 언캐니 밸리(불쾌한 골짜기)라고 불러요.

예를 들면 AI 로봇 중 소피아가 있죠. 안 불편하던가요? 사람처럼 얼굴 근육을 움직여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지만 어색하고 소름 끼쳐요. 피부도 실리콘으로 만들어 색조만 흉내 냈기 때문에 지금 기술로는 사람의 생기를 전혀 따라 할 수 없어요. 우리는 그런 로봇은 디자인하고 싶지 않아요. 그 방향으로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언캐니 밸리에 빠지지 않을 만큼의 높이로만 만들어요. 우리 로봇들은 로봇처럼 생겼어요. 그래야 한다고 믿고요. 소재 공학적으로 엄청나게 발전해서 받쳐주면 할 수야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