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영수증’ 끊어드릴까요?”

‘스마일’ 24,800원
‘행복’ 2,500원
‘놀람’ 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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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27,500원

표정에 ‘행복 값’을 매겨 영수증을 끊어주는 로봇이 있다. 감정분석로봇 ‘스마일’은 약 5초 동안 표정에 스친 감정을 분석한다. 놀람, 슬픔, 화남, 행복 등 감정을 분류한 뒤 정도에 따라 값을 측정한다. ‘슬픔’이나 ‘화남’이 긍정적인 감정보다 더 많이 책정되면 ‘마이너스’값을 찍기도 한다. 가격이 찍힌 영수증을 출력할 땐 ‘커피소년’의 노래 ‘행복의 주문’을 재생한다.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이 엉뚱한 상상력의 주인은 미디어 아티스트 겸 메이커, 최재필 씨다.

격무에 시달리던 어느 날 문득 그는 노트북 액정 화면에 비친 자신의 무표정한 얼굴을 ‘발견’했다. 평소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일하는 동안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자신의 표정에 이질감을 느낀 그는 하루종일 자신이 소비한 감정을 분석해줄 감정분석로봇 ‘스마일’을 만들었다. 그는 “내가 정말 오랫동안 웃지 않고 있을 때 한 번씩 ‘스마일!’을 외쳐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최재필 씨는 올해 메이커 페어 서울에 ‘스마일’을 출품하면서 ‘영수증’ 기능을 덧붙였다. 감정을 소비한 만큼 ‘지출 영수증’을 나눠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였다. 이틀 동안 열린 전시에는 수많은 관람객이 오갔다. 그중 최재필 씨의 작품 부스에만 총 1100명이 다녀갔다.

“얼마까지 나왔어요?”

대개 어른들은 ‘다른 사람은 얼마까지 나왔냐’고 꼭 물어왔다. 스마일이 웃음을 측정하는 기계라는 것을 눈치 챈 사람들은 높은 ‘행복값’을 받기 위해 억지로 웃기도 했다. 어떤 부모들은 스마일 앞에 앉은 자녀의 몸을 간지럽혔다. 다른 아이보다 ‘행복값’이 더 많이 나오길 바랐던 것이다. 그는 “옆구리를 아무리 찔러도 아이들은 억지로 웃지 않더라”라며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흥미로운 풍경이었다”라고 말했다.

스마일에게도 표정이 있다

스마일에게도 표정이 있다

영수증을 출력하는 모습

영수증을 출력하는 모습

사람들이 궁금해했던 ‘최고 금액’은 20만7천원. 최고 기록 보유자는 초로의 여성이었다. 40대 딸과 함께 메이커 페어에 온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달랐다. 딸이 ‘여기를 보고 웃으라’고 말해도, 그녀는 그저 인자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도 감정을 분석하는 내내 최고치가 일정하게 유지됐다.

“그게 사실 이미지 프로세싱이기 때문에 전문가가 보기에는 ‘웃는 상이구나’ 받아들이겠지만 전 그걸 감정으로 봤거든요. 온화한 감정이 잊히질 않아요. 저에게는 가장 크게 자리잡은 거예요. 가장 자연스러운 웃음 안에서 나온 감정 데이터.”

본업은 개발자, 부업은 작가…‘투잡’ 아티스트

스마일은 판매하는 제품이 아니다. ‘미디어 아트’ 작품이다. 생소한 장르다. 미디어 아트는 쉽게 말해 미디어 기술을 예술에 적용시킨 것이다. 컴퓨터를 예술에 접목시킨 것도 미디어 아트에 포함된다. 최재필 씨는 사람의 행동에 기계가 반응하는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 작품을 주로 만든다.

최재필 씨가 컴퓨터와 작품을 연결시키게 된 건 그가 공대생 출신의 현업 개발자이기 때문이다. 부업이 작가 겸 메이커고, 본업은 UX 콘텐츠 제작 업체 인터랙티브 콘텐츠 개발자다.

우리는 실생활에서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종종 접한다. 예를 들어 쇼핑몰이나 영화관에 설치된 대형 화면에 사람들의 행동에 따라 화면에도 재미있는 모양이 나타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게 인터랙티브 콘텐츠다.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만드느냐,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를 만드느냐. 최재필 씨의 본업과 부업은 그렇게 나뉜다.

2007년 미디어 아트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당시 미디어 아트가 많이 전시되던 메이커 페어에 ‘스마트 버디’를 출품했다. 파일을 먹어치우는 쓰레기통 스마트 버디를 본 아트센터 나비 미술관에서 먼저 연락이 왔고 이를 계기로 그의 본격적인 작품활동이 시작됐다.

직장에서 퇴근 후 새벽까지 메이킹 활동을 하느라 피로도 누적됐다. 최재필 씨는 “태어나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이 ‘피곤해 보이세요’라는 말이다”라며 “밤 10시에 자나 새벽 1시에 자나 항상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다. 어차피 들을 거 그냥 피곤하지 뭐, 생각한다”라며 웃어 보였다.

마음을 주고 받는 작업

최재필 씨의 작업은 예술과 생활을 넘나든다. 사람의 날숨에 반응해 함께 숨을 쉬는 나무, ‘잠복소’(2015년 作)처럼 철학적인 예술작품이 있는가 하면, 아이의 동심을 위해 집에서 만든 ‘말하는 토마토’ 같은 메이킹 작품도 있다.

말하는 토마토는 아이가 네다섯 살을 지나던 무렵 만들었다. 최재필 씨는 “아이가 토마토에 물을 줄 때 행복하게 줄 수 있었으면 했다”라고 말했다. 원리는 간단하다. 토마토 화분에 수분 센서를 부착해, 물을 줄 때가 되면 토마토가 “배고파요, 밥 주세요”라고 말하게 설정했다. 상황에 따라 토마토가 어떤 말을 했으면 하는지 아이와 상의했고 아이의 목소리를 변형해 토마토 캐릭터를 만들었다. “아이가 놀다가도 토마토가 ‘밥 주세요’라고 하면 다 팽개치고 물을 주러 가더라고요.”

말하는 토마토. (출처=데브아트)

말하는 토마토. (출처=데브아트)

후원하던 필리핀 소녀를 떠올리며 만든 작품도 있다. 당시 최재필 씨가 소녀와 소통하는 방법은 ‘펜팔’ 뿐이었다. ‘안 되는 영어’로 편지를 쓰면 3개월 뒤 필리핀에 도착하고, 답신을 받는 데도 3개월이 소요됐다. 편지 한 통을 주고 받는 데 6개월이 걸렸다. 그래서 만든 게 ‘우리에그’다.

“자주 편지를 보내고 싶은데 받는지도 모르겠고, 그 아이가 제가 쓴 편지를 읽을 때 제가 느낀 감성을 그대로 느끼는지도 모르겠고. 실시간으로 그 아이가 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고 만든 거예요.”.

우리에그(출처=데브아트)

우리에그(출처=데브아트)

한 사람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알을 흔들면 상대방 알도 흔들린다. 클라우드로 연결돼 있는 덕분에 인터넷이 연결돼 있으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반응할 수 있다. 와이파이 정보만 입력해두면 된다. 알은 흔들릴 때 빛을 발하고, 심장소리도 낸다. 자기가 언제 태어났는 지도 기억한다. 1년마다 스스로 이벤트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페이스북, 카카오톡, 수많은 메신저가 발달한 시대에 고작 흔들리는 알이라니.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그는 서로 마주보고 있는 그 ‘순간’의 특별함에 의미를 뒀다. 최재필 작가는 “우리에그는 ‘그 시간’에만 느낄 수 있다. 동시에 바라보고 있을 때만 가능한 감정을 전달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기존 미디어 아트와는 거리가 멀다. 최재필 씨는 자신의 작품을 두고 ‘제품과 작품 사이에 있다’고 설명했다. 제품으로 보는 이들은 “이걸 그래서 어떻게 팔 거냐”고 묻고, 작품으로 보는 이들은 ‘이게 작품이야?’라고 말하곤 했다. 미술 전공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생긴 고충이었다. 최재필 씨는 그 경계선상에서 힘들었지만 ‘다름’을 인정하자 마음이 편해졌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앞으로 새로운 작업군, 새로운 작가군을 만들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만들 공간’이 동네 헬스장처럼 생겨나길

최재필 씨는 작품을 전시할 땐 ‘미디어 아티스트’지만,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 ‘메이커’이기도 하다. 그는 생업으로 돈을 벌고 메이킹 작업에 돈을 쓴다. 제작에 드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 작업을 할 만한 공간도 마땅치 않다. 전시활동에서 수익이 나기도 하지만 작업비에 쓰기엔 부족한 편이다. 작업실을 얻고 싶지만 비용을 충당할 수 없어 그는 ‘메이커 스페이스’를 찾는다.

그러나 아직 국내는 메이커 문화가 자리 잡지 않은 상태다. 메이커라는 말도 생소한 상황이다. 메이커 스페이스 환경도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는 “우리나라 메이커 스페이스는 운영 시간부터 여러 면에서 직장인이 마음대로 쓰기 어렵다”라며 “장비도 시간 제약이 있고 해서 3D 프린터는 구매했고 레이저 커팅기는 그때그때 연락 닿는 곳에 가서 한다”라고 말했다.

3D프린터로 직접 만든 로봇을 들고 있는 최재필 씨

3D프린터로 직접 만든 로봇을 들고 있는 최재필 씨

최재필 씨의 바람은 메이커 스페이스가 ‘동네 헬스장’처럼 널리 확산되는 것. 동네마다 메이커 스페이스가 자리를 잡으면 창의적인 메이커 문화가 태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단언했다.

인터뷰 말미, 그에게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 물었다.

“세상에 따뜻함을 전달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목적은 단 하나거든요. 이걸로 누군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근데 그 사람만 행복하면 의미가 없거든요. 그 누구만이 아니라 그게 나도 행복하게 해야 돼, 그렇게 생각해요.”

 

글: 블로터 김인경 기자